" ... ... ... ... ...
4차원 공간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또 하나의 중요한 예술 운동은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 운동 이다. 그들의 이론은 주로 색체와 형태에 대한 신비적 주장과 함께 4차운 공간에 관한 내용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4차원에 대한 해석은 당시 데 스테일에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인 콘 Cohn 이나 우빙크 Ubink, 데 프리에스 De Vres 등이 모두 시공간과 4차원을 신비적 양상으로 다루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로 나타나듯, 과학적 이론에 바탕을 두었다기 보다는 정신적인 신비적 영역에 근거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데 스테일에서 4차원은 감각의 세계에 속하기 보다는 정신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4차원은 민코프스키나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연속체와는 별개로, 갑작스런 출현이나 소멸을 가능케하는 신비적 힘으로 인식되었다.' 는 반 데 벤의 주장이 이것을 말해준다.
테오 반 두스부르흐 Theo van Doesburg
데 스테일 작가들 중 4차원 공간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자는 테오 반 두스부르흐 Theo van Doesburg 이다. 그는 '근대 조형예술의 미학적 원리 Het Aestetisch Beginsel der Moderne Beeldende Kunst (1916)' 에서 다음과 같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시간-공간 결합체가 만들어지는 4차원의 공간에 대해 언급한다.
공간은 시각적 인식보다 앞선다. 시각 예술가들은 공간에 대한 형태와 색채의 일관된 관계들을 배열하거나 배가시키며 측정하고 정의한다. 예술가들에게 모든 대상물은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런 관계란 공간의 이미지 이다 ... 다시 말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공간 질서 속에서 만일 그 대상이 움직이고 있다면 시간-공간의 질서가 창조된다. 거기서 조화롭고 율동적인 전체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예술가의 임무이다 ... 건축의 기초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건축가의 시각적 의식은 공간 개념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형태와 공간에 의해서 확립된 관계는 건물의 운동과 미학적 가치를 결정한다.
새로운 예술의 보기에 대하여 Over het zien van de Nieuwe Kunst (1919).
그는 본 저서에서 공간의 표현을 4차원부터 n 차원의 종합체라고 말하고 있다 ... 우리의 눈이 한정된 공간의 차원으로, 예를 들어 3차원으로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보다 높은 차원, 즉 4차원에서 n 차원에 이르는 공간적 차원을 깨닫게 된다. 정신은 표현을 통해 그 자체를 인식하기 위해 그 자체를 표현하고자 노력하며, 3차원의 표현으로는 그러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유물론자적으로 한정된 시각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신적 표현이 3차원적 표현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 다시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3차원적 실체인가, 또는 n 차원적 정신을 객관화시킨 것인가의 문제이다 ... 인간의 발전이란 보다 많은 공간적 차원을 자각하는 것 뿐이다. 시각 예술에서 이러한 개념은 대략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정된다.
조형적인 건축을 향하여, Tot een Beeldenden Architectuur (1924).
공간과 시간. 새로운 건축은 건축의 양상으로서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도 고려한다. 시간과 공간의 통일은 건축의 외관에 완전히 새롭고 조형적인 양상, 즉 시간과 공간이 형성하는 4차원적 양상을 부여한다. 새로운 건축은 반육면체적이다. 즉, 그것은 단일의 폐쇄된 육면체 속에 다른 기능적 공간 단위를 포함시키려 애쓰지 않으며, 육면체의 중심에서 기능적 공간을 표출시킨다. 따라서, 높이, 폭, 길이에 시간이 더해져 개방된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조형적 표현이 된다. 이렇게 해서 건축은 어느 정도 부유하는 양상을 요구하며, 그것은 소위 중력이라는 자연적 힘에 반해서 표현된다.
회화와 조형예술, Schilderkunst en Plastiek (1926).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부정하기 보다는 요소주의는 이런 인자들을 신조형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 신조형주의는 표현 가능성이 2차원, 즉 평면에 한정되는 반면에, 요소주의는 4차원, 즉 시공간의 영역 속에서 조형주의의 잠재력을 실현한다.
... ... ... ... ... "
4차원 공간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또 하나의 중요한 예술 운동은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 운동 이다. 그들의 이론은 주로 색체와 형태에 대한 신비적 주장과 함께 4차운 공간에 관한 내용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4차원에 대한 해석은 당시 데 스테일에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인 콘 Cohn 이나 우빙크 Ubink, 데 프리에스 De Vres 등이 모두 시공간과 4차원을 신비적 양상으로 다루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로 나타나듯, 과학적 이론에 바탕을 두었다기 보다는 정신적인 신비적 영역에 근거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데 스테일에서 4차원은 감각의 세계에 속하기 보다는 정신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4차원은 민코프스키나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연속체와는 별개로, 갑작스런 출현이나 소멸을 가능케하는 신비적 힘으로 인식되었다.' 는 반 데 벤의 주장이 이것을 말해준다.
테오 반 두스부르흐 Theo van Doesburg
데 스테일 작가들 중 4차원 공간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자는 테오 반 두스부르흐 Theo van Doesburg 이다. 그는 '근대 조형예술의 미학적 원리 Het Aestetisch Beginsel der Moderne Beeldende Kunst (1916)' 에서 다음과 같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시간-공간 결합체가 만들어지는 4차원의 공간에 대해 언급한다.
공간은 시각적 인식보다 앞선다. 시각 예술가들은 공간에 대한 형태와 색채의 일관된 관계들을 배열하거나 배가시키며 측정하고 정의한다. 예술가들에게 모든 대상물은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런 관계란 공간의 이미지 이다 ... 다시 말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공간 질서 속에서 만일 그 대상이 움직이고 있다면 시간-공간의 질서가 창조된다. 거기서 조화롭고 율동적인 전체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예술가의 임무이다 ... 건축의 기초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건축가의 시각적 의식은 공간 개념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형태와 공간에 의해서 확립된 관계는 건물의 운동과 미학적 가치를 결정한다.
새로운 예술의 보기에 대하여 Over het zien van de Nieuwe Kunst (1919).
그는 본 저서에서 공간의 표현을 4차원부터 n 차원의 종합체라고 말하고 있다 ... 우리의 눈이 한정된 공간의 차원으로, 예를 들어 3차원으로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보다 높은 차원, 즉 4차원에서 n 차원에 이르는 공간적 차원을 깨닫게 된다. 정신은 표현을 통해 그 자체를 인식하기 위해 그 자체를 표현하고자 노력하며, 3차원의 표현으로는 그러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유물론자적으로 한정된 시각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신적 표현이 3차원적 표현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 다시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3차원적 실체인가, 또는 n 차원적 정신을 객관화시킨 것인가의 문제이다 ... 인간의 발전이란 보다 많은 공간적 차원을 자각하는 것 뿐이다. 시각 예술에서 이러한 개념은 대략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정된다.
조형적인 건축을 향하여, Tot een Beeldenden Architectuur (1924).
공간과 시간. 새로운 건축은 건축의 양상으로서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도 고려한다. 시간과 공간의 통일은 건축의 외관에 완전히 새롭고 조형적인 양상, 즉 시간과 공간이 형성하는 4차원적 양상을 부여한다. 새로운 건축은 반육면체적이다. 즉, 그것은 단일의 폐쇄된 육면체 속에 다른 기능적 공간 단위를 포함시키려 애쓰지 않으며, 육면체의 중심에서 기능적 공간을 표출시킨다. 따라서, 높이, 폭, 길이에 시간이 더해져 개방된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조형적 표현이 된다. 이렇게 해서 건축은 어느 정도 부유하는 양상을 요구하며, 그것은 소위 중력이라는 자연적 힘에 반해서 표현된다.
회화와 조형예술, Schilderkunst en Plastiek (1926).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부정하기 보다는 요소주의는 이런 인자들을 신조형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 신조형주의는 표현 가능성이 2차원, 즉 평면에 한정되는 반면에, 요소주의는 4차원, 즉 시공간의 영역 속에서 조형주의의 잠재력을 실현한다.
... ... ... ... ... "



덧글